6.10 민주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군사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운동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6월 항쟁, 6월 민주화 운동 등으로도 불리는데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 사건으로 이어지는 6.10 민주항쟁의 배경과 의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6.10 민주항쟁의 시작,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 군이 경찰에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말로 사망을 사고로 은폐하려다가 발각이 되었고, 결국 고문에 대해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기를 더욱 끓어오르게 만들었습니다.
2. 6.10 민주항쟁의 계기. 4.13 호헌 조치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서는 헌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전두환정부는 헌법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를 4.13 호헌 조치라고 합니다. 이에 더욱 많은 시민들이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하게 됩니다.
3. 전국적 시위의 도화선, 이한열 열사 사망사건
6월 10일 전국적인 시위를 하루 앞두고 민주화 집회에 참가했던 대학생 이한열 군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는 전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절정에 다다릅니다. 이 때 시위 참가 인원이 6월 내내 100만명에 달하였고, 당시 민정당 총재였던 차기 대권 후보 노태우는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민주화 선언(6.29 민주화 선언)을 하게 됩니다.
4. 6.10 민주항쟁의 의의
박정희 군사정권은 또 다른 쿠테타로 내려왔지만, 전두환 군사정권은 시민들의 힘으로 내려오게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음 정권 역시 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이 때 만들어진 헌법이 현재까지 내려오면서 대한민국의 민주화 기틀을 마련한 헌법이라는 점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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